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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의 승부 앞에 포기란 없다조정 선수 김예지
조정 선수 김예지

김예지 선수가 처음 태극 마크를 단 건 고등학교 2학년 때 일이다. 국가대표팀 막내였지만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달랐다.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는 한국 여자 조정 선수로는 처음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2016년 리우 올림픽 아시아-오세아니아 조정 지역 예선에서는 1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김예지 선수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는다.
남다른 승부욕과 근성을 타고났다는 말을 듣지만 그녀는 아직 갈 길이 멀고, 이루어야 할 것이 많기 때문이다.

운명처럼 조정을 만나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 안개가 자욱하고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날. 국가대표 여자 조정 선수들이 한창 훈련 중인 충주 탄금호 조정경기장을 찾았다. 궂은 날씨에도 연습을 하나 싶어 걱정한 것도 잠시, 비, 바람, 안개 따위는 국가대표 선수들을 힘들게 할 뿐 연습을 방해하지는 못했다. 코치가 우비를 입고 나서면 선수들도 자연스럽게 배를 이고 지고 성큼성큼 강으로 향하는 것이다.
멀리서 봐도 다부진 체격이 한눈에 들어올 만큼 신체 조건이 좋은 김예지 선수가 씩씩하게 인사를 건넸다. 1994년생으로 이제 만 22세가 되었지만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태극 마크를 달았으니 국가대표만 어느덧 7년 차, 그 만만치 않은 경력이 주는 느낌이 옹골차고 단단했다.
비인기 종목이지만 몇 년 전 MBC 예능 <무한도전>을 통해 사람들에게 큰 관심을 받았던 조정 종목에서 김예지 선수는 단연 독보적이다. 중3때 참가한 2009년 프랑스 세계주니어챔피언십 싱글스컬에서 고등학생이 대부분이던 33명의 출전 선수 중 19위에 오른 것을 시작으로,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한국 여자 조정 선수로는 최초로 금메달을 목에거는 쾌거를 거둔 것이다.

“초등학생 때부터 운동을 좋아했어요. 단거리 육상 선수로 활동했는데 진학한 중학교에서 조정부를 새로 만들면서 스카우트됐죠. 처음에는 모터보트를 타는 건 줄 알고 들어갔다가(웃음) 며칠 해보고는 안 한다고 했어요. 그런데 차마 관둘 수가 없었어요.”

조정부 감독과 코치가 도망치려는 그녀에게 집요하게 매달린 이유는 바로 조정에 걸맞은 뛰어난 신체 조건과 남다른 근성 때문이었다.


조정 선수 김예지

슬럼프 그리고 극복 국가대표 선수의 하루는 빈틈없고 단조롭다.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 운동을 하고 아침 식사를 한 뒤 버스를 타고 탄금호에 모여 훈련을 한다. 낮 12시 30분쯤 선수촌에 복귀해 점심을 먹은 뒤 오후 3시 30분부터 웨이트트레이닝과 실내운동을 한다. 저녁을 먹고 잠자리에 드는 시간은 대략 오후 10시쯤. 이렇듯 단순하지만 혹독한 훈련 시간을 견딜 수 있는 것은 마인드 컨트롤 덕분이다.

“저는 마인트 컨트롤을 제가 하는 게 아니라 선생님들이 시켜주세요. 국제 시합 사이에 국내 시합이 있어서 1년 내내 경기가 이어지는데, 제가 나이나 경력에 비해 마인드 컨트롤을 잘 못하거든요. 그래서 선배나 코치님에게 도움을 많이 받고 있죠.”

김예지 선수가 가장 힘들어하는 것은 ‘예측이 불가능한 불규칙성’이다.

“열심히 하고 있고 컨디션도 평소와 다름없는데 갑자기 기록이 안 나올때가 있어요. 그럴 때면 기가 죽고, 몸도 축 처져서 하기 싫다는 생각이 들죠. 세상에 당연한 일등은 없는데 지금까지 잘해왔으니 1등 하는 게 당연하고, 1등을 못하면 ‘해이해졌다’, ‘많이 컸다’ 이런 소리를 들으니 속상할 때가 많아요. 1등을 해도 축하받지 못하니까.”

국가대표가 된 지 7년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만만치 않은 운동의 어려움을 그대로 드러냈다. 가장 힘든 순간 역시 생각대로 되지 않는 그때 찾아온다. 김예지 선수에게는 리우 올림픽 때가 바로 그런 순간이었다.


조정 선수 김예지

“런던 올림픽 이후 4년이 지났기 때문에 실력이 많이 늘었을 거라 생각했는데, 딱 한 등수밖에 안 올랐어요. 정말 충격을 받았죠. 올림픽이 끝나고 나니 뭘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많은 선수가 올림픽이 끝나고 난 뒤 우울증을 겪었다고 해요. 국제 시합, 전국체전, 선발전까지 끝내자 쉬고 싶은 생각만 들었죠. 혼자 해외여행도 다녀오고, 혼자 놀아도 보고, 집에만 틀어박혀 있어도 보고. 그러다가 운동을 다시 해야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면서 또다시 조정을 했어요.”


조정 선수 김예지

한국 조정의 위상을 높이고 싶다 어떤 운동이 힘들지 않겠냐마는 조정은 일반인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매우 힘든 종목이다. 특히 땅이 아닌 물 위에서 시작한다는 건 누가 더 가볍게, 오래 떠가느냐가 관건이기 때문에 혹독한 훈련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처음에는 무산소 훈련을 많이 해 힘을 키우고 200m, 300m를 최대한 빨리 가는 훈련을 한다. 그리고 2000m를 가기 위해선 근지구력과 근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웨이트트레이닝으로 몸을 단련한다. 이 또한 웨이트트레이닝 선수 못지않게 강도가 높고, 달리기도 육상 선수처럼 빨리뛰어야 하며, 여러 상황으로 배를 못 탈 경우 실내운동도 그만큼 해내야 한다. 조정을 하는 데는 순발력도 필요해 서킷도 빠질 수 없다. 그 훈련양과 강도가 어마어마한 것은 물론 단 며칠만 쉬어도 근육이 빠지는 여자 선수들의 신체 특성상 잠시도 방심할 수 없으니, 멈추면 바로 쓰러지는 자전거처럼 절박하게 달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국가대표팀을 지도하는 강동균 코치는 “김예지 선수는 파워가 좋고, 한번에 최대 노력으로 중량의 저항에 대항하여 발휘할 수 있는 근력, 즉 1RM이 일반 여자 선수보다도 뛰어나다”고 그녀를 평가했다. 그리고 여기에 “승부욕이 매우 강한 선수”라는 말을 덧붙였다. 체격 조건이 훨씬 좋은 서양 선수들보다 월등한 것이 바로 ‘승부 근성’이라는 것이다.
지난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차지했을 때도 김예지 선수 특유의승부욕은 유감없이 발휘됐고, 옆에서 비슷하게 나가는 선수는 어떻게든 제치고 만다는 악바리 근성이 없었다면 오늘날 김예지 선수는 없었을 것이라는 게 그녀를 아는 사람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목표요? 올림픽 1등보다 우선은 내년에 열리는 아시안게임에서 우승해 2연패를 하고 싶어요. 그리고 국내 시합에서는 전부 1등을 하고 싶고요. 전국체전과 선발전 때 1등을 하고 아시안게임 2연패에 성공한 뒤, 한 등수씩 끌어올려서 세계 시합에서 우리 선수가 그동안 냈던 기록을 깨보고 싶습니다. 한국 최고 기록을 올려보고 싶어요.”


조정 선수 김예지

승부는 계속된다 큰 욕심을 부리기보다는 눈앞의 기록과 승리를 하나씩 챙겨서 국내는 물론 세계에서도 만만치 않은 선수로 자리 잡고 싶은 욕심을 숨기지 않는 김예지 선수. 그 꿈을 위해서 그녀는 오늘도 부지런히 훈련을 하고 곁에 있는 선배들을 눈여겨본다.

“자기 관리가 철저한 노력파 김동용 오빠는 정말 멋있는 선배예요. 선생님이 주신, 말도 안 된다고 생각되는 스케줄에 불만을 토로하면 ‘그래도 해’라고 딱 한마디를 해주죠. 그 외에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함께 금메달을 딴 지유진 언니, 실업팀에 갔다가 다시 국가대표로 돌아온 김슬기 언니는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큰 영향을 받는 선배이고요. 늘 감싸주고 타일러주고 더 좋은 방향으로 가도록 이끌어주시는 선배님과 선생님들에게 정말 감사드려요. 믿어주시는 만큼 더 열심히 해서 꼭 좋은 결과를 이루고 싶어요.”

조정은 비록 비인기 종목이지만 뜰 수 있는 기회는 국제 대회 때마다 있어왔다고 생각하는 김예지 선수. 노력한다면 언젠가는 인기 종목으로 국민에게 큰 관심과 사랑을 받을 수 있다고 확신하는 그녀는 인터뷰를 끝낸 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노력하는 수많은 선수들 사이로 총총히 사라졌다.

글 이경희, 사진 안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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